시에라리온의 에볼라 고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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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Lisa O’Carroll

출처: http://bit.ly/1wBA6DA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은 부모를 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그저 삼켜내며 스스로를 지켜야만 합니다.

세 명의 십대들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움푹 꺼져있는 눈으로 바라보며 쭈뼛거리며 다가왔습니다. 가장 키가 큰 한 소년이 먼저 작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 두 소녀들이 간신히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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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타운(Freetown)의 가난한 교외지역 모람비에(Morambie)에 살고 있는 20세 자이납 카마라(Zainab Kamara)는 그녀의 부모님이 에볼라 바이러스로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어린 네 자매와 함께 남겨졌습니다.


아이들은 먼지로 뒤덮인 벤치에 서로 바짝 붙어 앉았습니다. 16세 이브라힘(Ibrahim)에게 부모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묻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어요. 그저 2014년 8월 24일에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 뿐이에요.”

이브라힘의 어머니가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했을 당시 그녀는 임신 3, 4개월 차의 임산부였습니다. 임산부들이 질병으로부터 살아남을 확률이 특히나 희박하고, 실제로 대부분의 임산부들은 에볼라로 인해 사망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유산하셨고, 구급차에 실려가셨습니다. 얼마 후 퇴원 조치가 내려졌지만 불행히도 어머니는 끝내 병을 견뎌내지 못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장례를 치른 7일 후에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이브라힘은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에볼라 바이러스로 돌아가신 것이냐는 질문에 이브라힘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영국 자선단체 스트리트 차일드(Street Child)는 이웃들을 통해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의 수도 프리타운(Freetown)의 위성도시에 살고 있는 Sesay(세세이) 가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선단체의 켈파 카르그보(Kelfa Kargbo) 대표는 세세이 가족이 에볼라 바이러스의 발병지라 사회적으로 낙인 찍히는 게 두려워 에볼라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조차 꺼려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트리트 차일드(Street Child)가 그들을 발견하기 전 두 달 동안 세세이 가의 이브라힘(Ibrahim)과 14세 사우다투(Sawudatu), 그리고 13세 카디아투(Kadiatu)는 부모를 잃었다는 큰 슬픔을 안은 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의 이모들과 삼촌들 역시 사망하였으며, 먼 곳에 살고 있다는 단 한 명의 삼촌만이 친인척 중 유일한 성인 생존자로 추정됩니다.

세세이 가의 아이들은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2,000명의 고아들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이 수마저도 자선단체가 접촉하고 있거나 파악하고 있는 인원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에볼라 발병 이후 얼마나 많은 고아들이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바이러스의 전염을 방지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집중돼왔기 때문에, 부모들의 장례를 치른 후 고아가 된 아이들을 파악 및 신고하는 공식적인 움직임이 실질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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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타운(Freetown) 워털루(Waterloo)지역의 알림라나(Alimrana)에서 살아남은 세세이 가의 아이들은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의 여성•아동 복지부는 시에라리온에서 약 2,600명의 고아가 발생했다고 발표하였고, 유니세프(UNICEF)를 비롯한 기관들은 실제 수치는 7,000명을 초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두 달간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왔는지 묻자 이브라힘(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터질 듯한 울음을 참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 싸워나가고 있는 거에요.” 이브라힘은 먼지로 뒤덮인 화덕을 가리키며 진흙으로 냄비를 만들어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2,000레오네(SLL), 즉 30페니(GBP)에 팔아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어야 할 어린 나이의 이브라힘은 이미 가장이 되어 생계유지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브라힘의 아버지는 석탄과 나무를 팔았습니다. 또 그의 어머니는 매일을 고군분투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부모님을 여의고 난 후 이브라힘의 가장 큰 걱정은 교육비를 감당해내는 일입니다. 이브라힘은 변호사의 꿈을 키우고 있고, 그의 여동생 사우다투는 수학과 체육을, 카디아투는 수학과 사회학을 좋아합니다. 이브라힘은 자신과 두 여동생들이 보통의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의 학생들이 20대 때 수료하는 중등 교육을 받기 위한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브라힘은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지원은 좋은 학교 프로그램과 식량, 그리고 입을 옷 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써 이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입니다.

세세이 가의 세 남매는 라이베리아(Liberia)인들을 위한 수용소로 쓰이던 방 네 칸짜리 집에 살고 있습니다. 진흙으로 된 벽에는 두 장의 종교 포스터와 바늘 없는 시계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문에는 옷 몇 가지가 걸려있고 바닥에는 냄비, 주전자, 한 쌍의 슬리퍼가 놓여있습니다. 전기도 물도 화장실도 부엌도 없습니다. 물론 책이나 음악, 장난감 역시 없습니다. 이브라힘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래로 손을 댄 적이 없는듯한 부모님 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바닥의 매트리스와 천장의 줄에 걸려있는 옷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역사회의 지원

모람비에(Morambie)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는 이브라힘과 같이 에볼라 바이러스로 부모님을 잃은 다섯 명의 에볼라 고아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가족은 첫째인 20세 자이납 카마라(Zainab Kamara)와 13세 쌍둥이 형제, 8세 남동생과 5세의 막내 사이라이(Sailay)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역시 앞서 설명 했듯이 에볼라에 대한 대응이 전염을 방지하는데만 초점이 맞춰지며 남겨진 고아들에 대한 조치를 공식화할 시스템이 부재함에 따라 방치되게 되었습니다.

자이납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먹을 것 조차도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돈도, 식량도 없는 상태로 계속 지내왔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시신 처리 팀의 직원들이 너희들에게 당부했던 말이 있니? “아니요.” 직원들이 너희를 돕기 위해 올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니? “아니요.” 집 안에 아이들이 살고 있냐고 물어본 직원도 없었니? “아니요.” 그럼 정부에서 누군가가 오진 않았니?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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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들을 남겨둔 채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한 세세이 부모님의 침실


117개의 에볼라 바이러스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는 프리타운(Free town) 에서 자이납과 그의 동생들처럼 방치되는 아동들의 수는 매우 많습니다. 시신 처리 팀은 시신을 처리하여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므로 남겨진 고아들에 관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다루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타운에 개설된 117개의 에볼라 핫라인으로 방치된 고아들에 관한 전화가 매일 걸려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마라(Kamara) 가의 남겨진 아이들은 에볼라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의 유대감에 의지하며 공동체 내의 지원에 기대를 걸며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8월 에볼라 바이러스가 처음 모람비에(Morambie)에서 발병한 이래로 67명이 사망했고 25명의 아동들이 고아가 되었습니다. 모람비에의 지도자인 우마 카마라(Uma Kamara)는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집을 가리키며 “지금 저 안에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 세 명과 그 어린 아이들의 아버지의 시체가 있습니다. 이 마을은 매일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라고 비통하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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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타운(Freetown) 동쪽에 위치한 모람비에(Morambie)의 지도자 Umu Kamara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67명의 마을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어느 모람비에(Morambie)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 치러진 한 유명인사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마을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병했습니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장례절차의 일부로 시체를 씻었고, 이 의식 도중 장례식에 참여한 모람비에 사람이 감염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한 가구에서 29명 중 어머니와 7~8세 어린이들을 포함한 23명이 사망했습니다.” 라고 카마라는 설명합니다.

모람비에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마케니(Makeni) 근처의 마을에서도 앞서 말한 방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촌장의 시체를 발굴하여 시체를 씻는 전통적인 장례가 치뤄진 후, 10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의식은 현재 비상사태가 선포된 시국 아래 법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모람비에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카마라는 “모람비에의 사람들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가져다 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슬픔은 날마다 깊어져 가고 있어 주민들의 정신적 상처가 빨리 아물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전쟁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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