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두가지 논리적 틀에 맞춰진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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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9일 (금) 17:44 현재 판

저자: JAMES M. BUCHANAN AND YONG J. YOON 출처: http://www.independent.org/pdf/tir/tir_06_3_buchanan.pdf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의 선호 부문에서 전문적으로 편향되어있다. 사실, 자유시장을 위한 규범적인 지지는 현재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너무 보편적이어서, 그들의 위치에 대한 논리적인 기원은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때때로 관측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두 분류의 다른 논리적 논쟁이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알려준다는 것과 이런 논쟁들은 분리된 논리들이 시장의 개방에 대한 일반화된 공공적, 정치적 태도에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역 망에 대한 움직임 보다 포괄적인 용어로서의 세계화는 기본적인 규범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아주 다르게 보일 지도 모른다. 세계화로부터 떨어져 있거나 세계화를 향해 가고 있는 명확한 정책들은 민주주의 정부에서 선택의 대안이 되기 때문에 그런 차이들이 좀 더 또는 덜 직접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해설적인 목적으로, 우리는 두 가지 무역의 논리를 고전 정치적 경제에서 두 명의 중간 인물, Adam Smith와 David Ricardo로부터 Smithean과 Ricardian이라고 명명했다. 1870년에서 1970년까지 경제 규율을 장악했던 신고전주의적인 경제분석들은 부분적으로 이전의 Riparian논리와 1980년대와 그 후에 어느 정도 억지적인 Smithean 논리에 의해 그 한 세기 동안 알려졌다. 과학적 논쟁은 공공적, 정치적 태도로 넘치지만, Ricardian논리는 정책 대안들의 영향에 대한 공공의 인식을 위하여 명확한 결과를 통해 이 분야를 이끌어 가고 있다.

목차

특성화와 교환

Smithean논리는 간단하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거래를 하는가? 그들은 특성화가 생산적이기 때문에 거래를 한다. 각각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기 보다는 한 가지를 할 때 좀 더 경제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다른 물건들의 교환을 야기시키는 한 가지에 대한 생산에 있어서 집중하는 것은 자급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모은다는 의미가 된다. 아주 간단하게, 무역은 좀 더 효과적인 생산 수단이다. 교환 모델에서 사람들은 물건 생산에 대한 관계적 수용력과 그들의 물건 구매 선호도에서 차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특별히 주목해 보자. 한 가지 활동 또는 다른 것에 대한 노력을 집중함으로써 더 많은 이득이 보장되는 공동의 이익이 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에 특성화와 차후 분야 간의 무역이 나타났다. 또한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의 생산에 관련된 어떤 활동에서 특성화 될 것인지 미리 알아볼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라. 특성화는 지켜질 것이지만, 생산에 특성화된 요소들이 자연적으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비교 우위

무역의 기원을 설명하는 Ricardian 논리는 단순히 개요만 서술한 Smithean 논쟁과는 절대적으로 다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Adam Smith의 특성화 이익의 계산은 무역 분야가 처음에는 모든 면에서 동일했음에도 왜 교환이 상호간에 이익인지 설명한다. 반대로, Ricardian논리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각각의 결과물에 대한 그들의 생산력—에 교환의 기원을 둔다. 만약 그런 차이점들이 존재한다면, 특성화와 교환은 항상 상호간의 이익을 입증할 것이다. 무역은 다른 사람들 (또는 국가를 포함한 무역 단위)이 다른 물건을 생산하는 데에 각기 다른 비교 우위를 가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생산의 작은 범위를 훨씬 넘는, 특성화로부터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없다는 근본적인 Ricardian논리를 생각해보라. 만약 사람들이 생산력과 그들의 선호도가 같은 수준에 있다면, 무역은 이익을 창출 해내지 못한다. 상호간의 이익인 무역을 위해, 사람들은 그들의 생산력이나 선호가 다른 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개요를 설명하는 두 가지 스타일에서 논리적인 연속의 어느 정도 미묘한 반전을 주목하라. Smithean논리에서, 교환은 특성화의 이익 때문에 발생한다. Ricardian논리에서, 특성화와 차후의 무역은 잠재적인 무역 분야들이 내재하는 차이점들에 의해 이익이 된다.

두 모델들의 제약에서 차이점들은 주목 받기 충분하다. 틀에 박힌 것처럼, Smithean모델에서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들의 특성화를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시키는 힘은 영구적인 차이들에 반해 보상을 보장한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는 힘들은 지속적인 불화를 막기 위해 보상으로 존재한다. 아담스미스(Adam Smith)의 잘 알려진 deer-beaver설명은 이런 점에서 유용하다. 사람들은 사슴 사냥꾼이 되거나 혹은 비버 사냥꾼이 되기 때문에 그 범위에서 어떤 불화도 두 직업에 대한 보답으로 자연평형 또는 장시간의 평성에서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온전히 Ricardian적 배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이자 상대적으로 비버사냥보다 사슴사냥에서 더 잘 적응한다. 두 상품에 대한 어떤 상대적인 수요가 주어졌을 때 두 개의 직업으로부터 순소득은 다르다. 심지어 장기간의 평형에서도 순수익은 다르다.

일반화

경험적으로 가장 간단한 형태부터 복잡한 형태까지의 경제적 교환은 우리가 단지 한정해왔던 대조적인 논리에서 강조된 2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설명된다. 전문화는 우리의 사적인 업무들을 관리함으로써 각 개인이 인식하기 때문에 고유의 장점이 있다. 모은 일을 조금씩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한가지 일에 집중할 때 각 개인은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생산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이가 있다. 각 개인은 상당한 장점이 있다. 어떤 생산적 활동에서 또는 그 외 다른 활동들에서 각각 2가지의 근본논리나 그 두 가지 논리의 결합은 자유 무역의 규범적 방어로 즉시 일반화 될 수 있다. 이 방어의 명료성은 경제학자의 기초적인 업무로 고려된다. 이때 경제학자는 모든 사람의 복지가 기초원리에 대한 일반화된 대중적인 수용성에 의해 진보된다는 그들의 신념을 지키려 한다.

여기서 우리의 논제는 상당히 다른 성향을 가진 Smithean과 Ricardian 은 경제학자로부터 전달받고 궁극적으로는 대중의 태도로 설명되기 때문에 무역 망의 확장을 위한 지지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논리가 적용된 비교적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찬반은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연합으로 제도화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기초적인 Smithean 논리의 결합이 Ricardian 논리의 결합보다 시장 연대의 확장에 대해 더 강한 지지를 야기시킨다.

시장확대

세계화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의 핵심은 무역에 관여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상호 진입의 허가 여부와 더 많은 잠재력이 있는 무역업자들에 대한 기회를 봉쇄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한 것이다.

어떤 경제에서든지 무역은 한정된 행정 절차 내에서 사람들과 그룹들간에 우선적으로 시행되고 제품과 서비스는 전문생산업자들에 의해 생산된다. Smithean의 개념에서 생산은 사람들 사이의 어떤 자연적이거나 고유적 차이 없이 일반적으로 증가하는 수익 하에 발생한다. 잠재적 교환에 대한 조직망의 규모에 있어서 증가는 어떻게 시장 관여 자에 영향을 미칠까? 전문화에 대한 부가적인 연구는 모든 관여 자에 대한 가치를 주입시키기 위한 산출 가치의 비율을 증가시킨다. 가능한 과도기적 적응은 제외하고 net losers가 없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수익을 얻게 된다. Ricardian의 개념에서 생산과 교환의 관찰된 전 확장의 유형은 부분적으로 자연적인 능력에서의 유력한 차이점 들을 반영한다.

각각의 직업범주에서 노동자들의 순수익에서의 차이점은 그들의 상대적인 생산능력과 최종상품의 수요에 대한 유력한 패턴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무엇이 무역관계를 확장시키는데 예측된 효과일까?

현재 개발된 시장으로의 진입과 교환을 위환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국내 또는 지역 생산자들에 더 가깝게 그 단체를 모방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net losers들은 확장에 앞서 제품의 생산이 있어서 확장이 수입을 위해 행해지고 심지어 과도기적 적응 이후에 상대적 강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소비자로서 그들의 역할은 모든 사람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득은 수입에 위협받는 단체들에 대한 생산자로서 손실에 의해 압도당한 것이다. Ricardian논리는 반드시 전문생산자들의 각 단체에서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상이한 효과에 집중한다. 그 특징으로 기본적 Smithean 논리와 전체적으로 무관하다.

무역에 대한 두 가지 기본적 논리에서 상충할 가능성이 있는 영향은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규범적인 판단에 있어서 순진한 공리주의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으로 이득과 손실을 기꺼이 합산하려 해왔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시장확대에 따른 이득을 본 사람은 손실을 입을 사람에게 보상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보상이 일반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경제학자들은 규범적인 영향에 관한 Smithean 체계와의 큰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Ricardian 설명체계를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1870년대부터 시작된 신고전적인 분석구조에 의한 고전적인 지적 계획의 대체 이후로, Ricardian 설명 체계의 수용은 경제학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기 신고전주의 분석의 지속되는 공헌은 순환을 폐쇄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추정되고 순환을 폐쇄함으로써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투입 가격과 생산에 대한 이론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전가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 경제학자들이 그 공급량에 의해 만들어진 총 상품에 대해 지불된 양과 공급량을 위해 지불된 양이 동일하다 는 것을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증명할까? 어떻게 그들은 흑자 또는 적자에 대한 부재를 설명할 것인가?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를 시장 경제는 생산 기능이 어디서든 선형이고 동질이라는 불변 수익 단위로의 귀결된 특징에 의해 정의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해결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그들은 애덤 스미스의 특화에 관한 기본적인 관점과 불변수익의 제약이 충돌한다는 사실을 대해서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스미스의 이론은 무시되었고, 결국 지금에 와서 다시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 때에 재조명 될 때까지 세기의 과정에서 다시 그 이론이 부각되었다. 불변수익의 신고전주의적인 제한요소는 경제학자들에게 리카도학파의 논리를 교역의 근본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들의 교재 예제를 보면, 교역은 불변 수익이 개인적인 노력의 정도에 따라 부과 될 때 조차도 비교적인 우위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신고전주의의 불변수익과 리카르도 학파의 비교우위론 사이에 문제점은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리카도학파의 체제에서 교역의 기원을 찾는 것이 아주 조금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시장(경제)으로부터 정치까지

교역의 두 가지 기본적인 논리 사이에서의 차이에 대한 우리들의 해석은 관여하는 주체가 오직 시장의 자연스러운 발생과 작동이라면 소수만 이해하는 지적인 활동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효과적인 시장결합의 규모가 정치적면에서 결정된다고 인식할 때, 즉 분명한 집단 행동을 통해서 인식할 때 이러한 차이가 좀더 명백해진다. 민족 국가들이 존재하고 각 나라는 국경선을 긋는다. 지난 역사 동안 거의 모든 곳에서 정부 경계선 내에 있는 시장에서의 참여자들의 활동은 정치적 경계선을 넘어선 시장에서의 참여자의 활동과 다르게 취급 받아 왔다. 아직 상대적으로 몇몇의 사례만이 시장이 정치적인 신분과 관계 없이 교역 관계에 관여하고 싶은 모두에게 개방되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장의 규모는 정치적 선택에 종속되기 때문에 이 것의 적절한 크기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관련된 이슈들의 포괄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세계화의 논의 중심에 서있다. 우리는 교역의 두 가지 별개의 논리에 대하여 사람들의 이해가 아마, 정치적 태도에 큰 영향력을 가한 것이기에 시장의 확장이나 제한, 이주 정책들, 그리고 역사적으로 분리된 국가 경제의 증가하는 통합에 대한 정치적 태도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이 것은 유럽 연합과NAFTA, 남미 공동 시장, 그리고 다른 기관들의 태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스미스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시장확장에 대한 거의 직접적이고 일반적인 지지를 보여준다. 이 논리의 중점적인 원칙은, 스미스 그 자식에 의해 밝혀지길, 노동 분배는 시장의 규모에 의해 제한고 이는 국부는 시장 결합의 규모에 따라서 직접적으로 증가하는 뜻을 내포한다. 이러한 지적 –분석적 구조에서는 손해를 본 사람들의 손실에 반한 이익을 본 사람들의 수익의 측정할 필요가 없다. 근본적으로, 영구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은 없고 모든 사람이 이익을 본다. 확장된 시장 결합은 경제적 가치에서의 일반화된 수익과 함께 보다 확장된 특화를 만들어 낸다.

대조적으로, 리카도학설은 한 정치적 조직체가 제안된 시장의 영역의 확장에 관련하여 필요한 정지척 선택에 직면했을 때 좀 더 미심쩍은 근거를 제공한다. 전반적으로, 아마 비교적 우위의 보다 풍족한 이용을 가져오는 총액의 이익은 계산될 수 있지만, 사람들과 집단들은 아마 시장의 확장에 의하여 영향을 다르게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산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시장 진입자들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같은 상품들에 관하여 내재적으로 비교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집단들은 제안된 시장 확장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러한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국경을 초월한 시장의 통합의 제안을 반대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반대는 정치적 연합체의 효과와 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리카도학파의 체계에 사실상 몰두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은 숨겨진 공리주의 평가에 의존하여 제안된 시장 확장을 아직도 옹호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이 보상지불의 불확실성을 인정해도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심지어 이러한 경제학자들도, 간단히 말하자면, ―경제적인 효율성’의 옹호가 정치적 논쟁에서 연약한 갈대와 같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시장의 사고방식

스미스와 리카르도 모형은 우리가 시장 교환의 관측된 과정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이 현상들 자체는 물론 같고 경험적으로 관찰된 교환 관계는 확실히 두 가지 설명 모델의 요소를 구체화시킨다. 사람들은 전문화(기관의 조직에서 전문화되는 것을 포함해서)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문화는 이익을 낳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가 주목한대로, 철학자와 거리의 짐꾼 사이의 차이는 그들의 전문성에 대한 노력에 관해서는 작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낼 그들의 상대적인 능력에도 차이가 있다. 짐작하건대 균형에 도달하기 위한 완벽한 일시적인 조정이 있은 후에도 상대우위를 얻을 비경쟁적 집단이 존재할 것이다.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7 피트의 키이고 농구하는 데 능숙하다.

교역의 기원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되는 사고방식은 사람들이 얼마나 그들이 바라보는 복합적인 현실의 가치를 평가하는지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사람들은 소득과 부에 대해서, 아마도 대단히 크게 다르게 관찰될 것이다. 교환을 선택에 의한 특화로만 설명하는 스미스 모델을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남기고 보면, 사람들은 관찰된 차이점을 일시적인 것으로 볼 것이며 시장 가격이 ―자연스러운 수준을 향해 움직임에 따라 제거한 것이다. 만약 철학자들이 현재 거리 짐꾼보다 훨씬 더 돈을 많이 번다면,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특화 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게다가 스미스의 사고방식이 거리 짐꾼들은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들은 추가적인 거리 짐꾼들의 이주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혹은 될지도 모르는 상품들의 수입에 대해서 크나큰 염려를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반면에 Ricardian논리는 사람들을 다른 직업의 범주에서 사람들 사이의 수입에서 주요 차이점을 갖는 관찰된 현실에 대해 꽤나 다른 평가를 하게 만든다. Ricardian은 그런 경제적 차이점들을 좀 더 영구적인 것과 덜 효과적으로 그들을 줄이는 경향이 있는 적응의 힘으로 볼 것이다. 미국에서의 경우처럼, 만약 시장의 개방이 최근 가내 노동력의 비교적 미숙한 구성원으로부터 생산된 더욱 다양한 종류의 물건이 수입된다는 것을 제안한, 시장 확장에 대한 반대를 위해 조직된 정치적 연합들은 조합들과 그들의 정치적 대리인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을 것이다. 게다가, 시장개방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그들에게 지불하는 보상을 위한 계획들은 좀 더 동정 어린 소리들을 명령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환의 기원에 관한 기본 관점은 공공과 세계화를 향한 정치적 자세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정치적 선택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 핵심에서 벗어난 Ricardian 논리만을 따름으로써, 경제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시장 개방에 대한 움직임을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욱 어렵게 만들어 온 책임이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와 Smithean 논리, Ricardian 논리

결과적으로, 정부의 모든 사람들이 집단의 선택에 참여하는 데에 충분히 능숙하다는 추정에 따라 가능한 이상으로서 민주당이 잠정적으로 갖는 ―정책 개방. Ricardian보다 Smithean의 개인 역량 개념과 훨씬 더 잘 어울려 보이는 그럴듯한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 보편적인 정책과 경제에 관한 언급이다. 만약 우리의 고정관념이 시민으로서 그들의 궁극적인 권한에서 모든 사람들 사이에 평등을 허락한다면, 우리의 고정관념은 또한 허락하지 경제적 가치의 생산자로서 그들의 궁극적인 권한에서 모든 사람들 사이의 평등을 허락하지 말아야 할까? 아담 스미스 민주당원은 전 모순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싫든 좋든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중 몇몇이 좀 더 평등하다고 판단하도록 강요한 David Ricardo ―민주당원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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