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에리트리아(Eritrea)를 탈출하는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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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Greg Beals

출처: http://bit.ly/JlGGTO


그 전날의 딸의 죽음으로 인한 애통함을 안고 그들은 늦은 밤에 국경을 건넜습니다. Gebre의 두 살배기 딸 Arsama는 독감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28살인 Gebre와 그의 아내 25살 Teka씨는 그들의 딸을 묻고 다음날 저녁 에티오피아로 건너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망명을 결심했던 것은 단지 딸 Arsama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Gebre는 가족을 부양할 능력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7년 간의 군복무(국가에 봉사해야 하는 에리트리아 국민의 의무 중 일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매우 화가 났었습니다. Gebre는 에리트리아에 계속 남아있는 한 비극이 끝이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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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마이 아이니(Mai-Aini) 난민 캠프에서 Gebre, Teka와 그의 아들 Samuel


초승달이 뜬 밤, Gebre 부부는 국경을 건넜습니다. 처음 수단으로 갔다가 얼마간 머물고 난 후 에티오피아로 가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Gebre는 에리트리아 국경순찰대의 감시를 피해 국경의 산을 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동이 틀 때까지, Gebre 부부는 다음 일정을 위한 재집결지인 수단 동부의 샤가랍(Shagarab)을 향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Gebre가 지역 주민들에게 목적지의 방향을 묻고 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 앞에 트럭을 멈춰 세웠습니다. 라이시다(raishida)라고 불리는 이들은 밝은 피부에 AK-47 소총을 휴대하고 있었습니다. Gebre와 그의 아내는 차량 뒤편에 태워져 천으로 둘러싸였습니다. 이들은 Gebre 부부에게 샤가랍(Shagarab) 난민 캠프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매년 수천 명의 에리트리안 망명자들은 수단과 에티오피아를 거쳐 이집트, 이스라엘, 모로코, 유럽 등으로 가려고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비참한 결과를 맞기도 합니다. 에티오피아에 있는 마이 아이니(Mai-Aini)와 아디히러시(Adi-Hirush) 캠프에는 Gebre 부부를 포함해서 이집트 정부가 망명을 거부한 400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엔난민고등사무소(UNHCR :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는 많은 이들이 사막을 건너다 굶어 죽거나 강을 건너다 죽으며 혹은 밀입국 범죄조직에 의해 살해 당한다고 합니다.

“망명입국 거부자들은 운이 좋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망명자들은 죽습니다.” Michael Owor, UNHCR 북부 에티오피아 사무국의 책임자


UNHCR의 관계자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제3국으로 가려는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는 망명자들의 숫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합니다.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샤가랍(Shagarab) 난민 캠프에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의 80%가 에티오피아 캠프에서 왔다고 합니다.

“망명을 처음 실패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망명을 시도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심리적 치료와 함께 생계수단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삶의 희망을 찾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Benoit Hamanyimana, UNHCR의 야전보호관


밀입국 브로커들은 심지어 난민 캠프로 침입해, 제3국으로의 이송을 제안하며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새로 캠프에 도착한 난민들의 지인들입니다. 한번은 에티오피아 당국이 밀입국 브로커들에 도움을 준 직원들을 밀입국원조 혐의로 체포한 적도 있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Gebre 부부의 경우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 트럭에 올라탄 뒤 1시간 30분 후에, Gebre부부는 밀항 범죄집단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들은 Gebre 부부에게 석방의 대가로 3,000 달러(USD)를 요구했습니다. Gebre는 “그들은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플라스틱으로 온몸을 감아서 불태워 버릴 거라고 협박하였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나를 심하게 때리지는 않았지만 내 아내에게는 등에 흉터가 생길 정도로 때렸습니다.”


협박은 10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Gebre는 납치범들에게 몸값을 지불할 돈이 없다고 계속해서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도망치거나 아니면 다른 상황이 발생하길 바라는 것 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와 그의 아내는 도망을 치거나 살해당하진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팔려 이집트 시나이(Sinai) 반도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두인족(Bedouin) 사람들에게 다시 팔렸습니다. 그들은 밀폐된 건물로 이송되어 적은 양의 밥과 죽으로 끼니를 이었습니다. 그곳엔 수단인, 소말리아인, 에티오피아인 등 35명의 다른 억류자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망명시도로 인해 그곳에 격리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말을 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란 협박을 들었습니다.


베두인족 사람들은 Gebre 부부에게 6,000 달러(USD)를 내놓던지, 아니면 죽던지 선택을 하라고 협박하였습니다. 그들은 부부에게 전화기를 주면서 에리트리아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전화를 하였지만, 그들의 친척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습니다. 몸값 지불을 위한 협상은 5주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몸값 지불이 끝나자 베두인족 사람들은 부부를 사막에 버렸습니다.


“저는 한 번도 이집트에 가기를 희망한 적이 없고, 이스라엘에 가고 싶지도 않았어요.” Gebre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집트에 남아있으면 어떤 일이 닥칠지 알고 있었기에 베두인족에게 이스라엘 국경으로 가는 방향이 어디냐고 물어봤습니다.” 납치범들은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주었고 Gebre 부부는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총성이 들렸습니다. 베두인족 사람들이 Gebre 부부에게 이집트 국경수비대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알려준 것 이었습니다. 총알은 Gebre의 등 아래쪽 부분을 통과하여 위장 근처 부분을 뚫고 나왔습니다. 아내 Teka도 팔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시나이에 있는 병원으로 호송되어, 여의사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Gebre는 그녀가 험한 여정 길에서 처음으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1 개월 후, 그들 부부는 이집트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지하에 있었고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어요” Gebre는 회상합니다. “남녀 수감시설이 분리되어 있어서 아내에게 말을 걸 수조차 없었어요.”


지난 경험을 되새기면서 Gebre는 정신을 잃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사실 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었습니다. “부모님 생각이 났었고 베두인족에게 그들의 전 재산을 줬을 때 부모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했어요. 총상으로 인해 불구가 되는 것에 대한 생각도 했고, 총상을 입은 아내가 앞으로 어떻게 혼자서 감당해내야 할지 걱정도 했습니다.”


Gebre는 그의 딸이었던 Arsama도 떠올렸습니다. “내 딸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죽었는지를 생각해 봤어요.” 그가 말합니다. “살아 있었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아마 그녀는 너무 어려서, 우리가 왜 이렇게 절망적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겠죠.”


다행히 그들을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여의사가 감옥으로 찾아와 Gebre 부부를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몇 개월 후 카이로에 있는 에티오피아 대사관을 동행하여 돌아왔습니다. 그 대사관은 부부의 사진과 주소를 파악하여 돌아갔습니다. 여의사는 Gebre에게 그들 부부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수 있는 항공비를 지불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시련을 겪은 지 1년 후, Gebre 부부는 마이 아이니 난민 캠프에서 Samuel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얻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을 생각하면 삶의 희망이 생깁니다.” 그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웃으며 말합니다. “내 아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늙었을 때 내 아들이 나를 돌봐줄 만큼 성장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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