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내전으로 고통 받는 아비에이(Abyei)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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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Integrated Regional Information Networks

출처: http://bit.ly/HZZn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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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 내전이 시작된 이후 아비에이에서는 약 110,000여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인근 아곡(Agok) 지역과

남부수단(South Sudan)의 와랍(Warrap)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남수단과 북수단 사이에 놓인 경계선 문제 때문에 분쟁지역(a disputed region)이 되었던 아비에이(Abyei) 에서 빠져 나온 지 약 일년 후인 현재, 수 천만 명의 민간인들은 남부수단(South Sudan)의 아보톡(Abothok)과 같은 마을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진흙으로 지어진 오두막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아보톡(Abothok)의 지방 행정관 캇 쿠올(KatKuol)은 수단 군대가 아비에이(Abyei)를 점령한 2011년 5월, 그 지역으로부터 6,000여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유입되었고, 마을 인구가 현재 만 명까지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쿠올은 “난민들에게는 먹을 것도 잘 곳도 없습니다. 현재 상황은 매우 안 좋습니다. 모든 비축 식량들과 UN의 배급품도 이젠 모두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단이 아비에이(Abyei)를 점령함에 따라 십 만 명이넘는 지역 토착 거주민인 딩카족이 남쪽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수단 군대는 9월에 아비에이(Abyei)를 떠날 것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약 3,800명의 아비에이(Abyei) 유엔 임시보안군 또한 그곳에 머물고있는 중입니다. 캇 쿠올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원래 약간의 음식과 거주공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그들의 친척들이 아비에이(Abyei)로부터 피난해 오면서 그들은 음식과 공간을 친척들에게 주었고, 가지고 있던 가축들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팔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제네바에 근거지를 둔 조사기관 Small Arms Survey가 발표한 아비에이(Abyei)에 대한 정보에 의하면, 몇 천명의 딩카족은 자신들이 원래 살던 지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딩카족들의 이동이 유동적이긴 하지만, 그들은 남겨 두고 온 재산 상태와 지역의 전반적인 안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아비에이(Abyei)를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또 정보통이 전하길,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비란 “건기인 2012년 10월, 11월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합니다. 정보통은 인구 이동이 수단 군대의 철수에 달려있음을 덧붙였습니다.



아비에이(Abyei)에서 쫓겨나 현재는 아보톡(Abothok) 근처의 마을인 니인타(Nyintar)에서 거주하고 있는 주민 중에는 아씨 루알(Aciei Lual)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루알은 예전에 아비에이(Abyei)에서 살 때 가족들을 위해 옥수수, 수수, 땅콩 및 콩을 키웠으며, 남은 것들을 팔아 약 30달러(USD)를 벌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비에이(Abyei)에서 탈출한 이후로 루알은 작고 쓴 과일인 라롭을 주식으로 하고, 친절한마을 주민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여가며 그녀의 일곱 자녀들을 키워왔다고 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직원(경제 보안 대표)인 안드레아 안셀미(AndreaAnselmi)는 이 마을들이 엄청난 식량난에 처해있다고 말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아비에이(Abyei) 거주민들이 남쪽으로 이동했어요. 대부분의 주민들이 작년만큼 농사를 짓지 못했고, 때문에 그들에겐 수확물이 없을뿐더러 올해 경작할 씨조차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혹시 농사를 지었는지 물어봤는데, 220가구 중 20,30명이 채 안 되는 여자들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제한된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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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량과 자원은 쫓겨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 입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친척이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존해 생활해왔습니다. 그러나 우기가 다가오고 비축 식량이 떨어짐에 따라 이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생존 전략들도 바닥이 난 상태입니다. “난민들은 예전엔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마련했었지만, 현재는 강이 거의 다 말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난민들은 야생에 있는 야채나 과일을 먹거나, 혹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장작을 모으고 숯을 만듭니다.” 최근과부가 된 여성들이 크게 늘어난 지역의 상황에 대해 안셀미(Anselmi)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루알은 가족들과 함께 아비에이(Abyei)의 집에서 달아날때, 시동생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사건은루알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루알은 아비에이(Abyei)에 평화가 올 때까지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쪽 저쪽으로 떨어져 나뒹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죽었는지 다쳤는지 모릅니다. 그저 저는 이 일이 저에게 닥치지 않기만을 신께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비에이(Abyei)에서 일어난 일을 본 후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루알은 가족들과 농사에만 의존해 살아왔기 때문에, “씨앗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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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위원회(ICRC)로부터 원조를 받는 난민들의 모습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아비에이(Abyei)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2,300개 이상의 가구에 씨앗과연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는 1,500명 정도의 사람들과피난민들이 다시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의 일환입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또한 사람들이 야채씨앗이나 곡물 씨앗을 먹는 것을 막고, 스스로 농사 지을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삼 주치의 주요 곡물, 기름, 설탕 등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섯 가족이 하루 한 컵의 수수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는 아치에이 아롭(Aciei Arop)은 이제 그녀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농사를 지을수 있게 된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추수때가 되면 집에서 먹을 다양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외에 남은 식량은 내다 팔 수 있게될 것입니다.” 몇몇 다른 사람들이 아롭의 소중한 씨앗을 지키는 동안 그녀가 몇 부대의 옥수수와 수수를 힘겹게 옮기면서 말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로 이제는 스스로 요리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농사를 지을 준비가 됐습니다.”라고 아롭이 덧붙였습니다. 아롭은 가족들이 총소리를 듣고 집에서 도망친 지 오래 지났지만, 친척들 대부분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가 멈추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니인타(Nyintar)가 그녀의 고향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아보톡(Abothok)에 거주하고 있는 아모 마뉴올(Amou Manyuol)은 깨끗한 물과 충분한 식량이 있던 아비에이(Abyei)로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비록 그곳에서 세 명의 형제를 잃었을 지라도 말입니다. “나의 세형제는 집에서 탈출하는 도중 죽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나오는 중 폭탄이 우리 사이에 떨어졌고,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예전의 아비에이(Abyei)에서의 삶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적십자위원회과 같은 단체의 도움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마뉴올은 말했습니다. 마뉴올 주위에 식량 배급을 기다리던 수 백 명의 여자들이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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